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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연봉이 오르면 돈 문제의 상당 부분이 해결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월급이 20만 원만 더 들어오면 그 돈은 그대로 저축해야지. 다음 연봉협상에서 조금 더 오르면 투자금도 늘려야지." 계산은 아주 간단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실제 통장에서는 그 계산이 한 번도 맞지 않았습니다.
첫 월급을 받던 시절보다 분명 버는 돈은 늘었는데 월급 날을 며칠 앞둔 통장의 모습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저축과 투자도 생각했던 것만큼 빠르게 늘지 않았고요.
처음에는 이유를 물가에서 찾았습니다.
"물가가 많이 올랐으니까. 아무래도 경조사비도 늘어나고 후배들 밥도 사주면서 나이가 들면서 나가는 돈도 많아졌으니까." 하면서 말입니다.
물론 둘 다 맞는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카드 내역을 몇 달치 펼쳐놓고 보니 그것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돈이 꽤 많았습니다.
월급이 오르는 동안 제가 생각하는 ‘평범한 생활’의 가격도 같이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점심 한 끼를 먹어도 가격을 꽤 신경 썼습니다.
택시는 정말 늦었을 때 타는 것이었고, 배달 음식은 주말에 한 번 시켜 먹는 작은 이벤트에 가까웠습니다. 사고 싶은 물건이 생기면 며칠은 고민했고요.
그런데 소득이 조금씩 늘면서 기준도 아주 조금씩 움직였습니다.
커피에 디저트를 추가하는 일이 자연스러워졌고 늦게까지 일한 날에는 택시를 타는 데 별 고민을 하지 않게 됐습니다. 예전에는 가격부터 봤던 물건도 어느 순간부터는 ‘이 정도는 괜찮지’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고 저도 모르게 합리화를 하고 있다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하나는 별것 아니었습니다.
문제는 그 별것 아닌 것들이 어느 순간 새로운 기본값이 됐다는 겁니다.
한 번 좋은 것을 경험하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소비를 늘린다는 느낌조차 들지 않습니다. 그냥 원래 이렇게 살았던 것처럼 느껴집니다. 마치 늘어난 고무줄 같았습니다.
그래서 월급은 계단처럼 올랐는데 생활비도 뒤에서 같은 계단을 따라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재테크 공부를 하면서 이걸 흔히 생활수준 인플레이션과 라이프스타일 인플레이션이라고 부른다는 걸 알았습니다.
소득이 증가하면 그만큼 저축이 늘어나는 게 아니라 소비 수준도 함께 높아지는 현상입니다.
생각해 보면 이상한 일도 아닙니다.
월급이 30만 원 올랐다고 해서 매달 30만 원짜리 물건을 새로 사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대신 1만 원, 2만 원짜리 선택들이 조금씩 달라집니다.
조금 더 좋은 식당을 선택하고 배송비를 아끼기 위해 기다리기보다 바로 주문하고 예전이라면 고민했을 서비스를 하나 더 구독합니다.
그래서 소비가 늘었다는 사실을 알아채기가 어렵습니다.
제 경우에도 카드 내역 어디에도 ‘연봉 인상으로 인한 과소비 30만 원’이라는 항목은 없었습니다.
5만 원, 3만 원, 2만 원으로 흩어져 있었죠.
그 뒤부터 연봉이 오를 때 제가 가장 먼저 확인하는 숫자가 하나 생겼습니다.
저축액이 아니라 저축률입니다.
예를 들어 월 300만 원을 벌 때 60만 원을 모았다면 저축률은 20%입니다.
몇 년 뒤 월급이 400만 원이 됐는데 70만 원을 모으고 있다면 저축액 자체는 늘었습니다. 겉으로 보면 전보다 잘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저축률은 17.5%로 오히려 낮아졌습니다. 이 숫자를 보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많이 버는 것과 돈을 잘 모으는 것은 같은 능력이 아니었습니다.
연봉은 회사와 시장이 어느 정도 결정하지만 들어온 돈 중 얼마를 미래의 나에게 보내는지는 제가 결정하는 영역이었습니다.
그래서 규칙을 하나 만들었습니다.
월급이 오르면 늘어난 돈을 전부 생활비 통장에 넣지 않는 것입니다.
정해진 비율이 있는 건 아닙니다. 연봉이 오른 시점마다 상황이 달랐으니까요.
대신 인상분의 일부는 제가 써보기 전에 먼저 투자와 저축 자리로 보냅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써보고 남으면 넣는다’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지난번 월급날 루틴 글에서 적었던 선배분 원칙과 똑같습니다.
생활수준은 한번 올라가면 다시 내리기가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반면 처음부터 없었던 돈은 의외로 쉽게 적응합니다.
월급이 20만 원 늘었는데 자동이체도 10만 원 늘어나면 제 생활이 경험하는 인상은 10만 원뿐입니다.
그래도 전보다 조금 여유로워졌고 미래의 제 몫도 같이 늘었습니다.
저에게는 이 방식이 소비를 억지로 줄이는 것보다 훨씬 오래갔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가끔 이상한 결론으로 갑니다.
연봉이 아무리 올라도 대학생처럼 살아야 돈을 모을 수 있다는 식으로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돈을 버는 이유에는 오늘을 더 편하게 사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전보다 좋은 음식을 먹을 수도 있고, 여행에 더 쓸 수도 있고, 시간을 아껴주는 서비스에 돈을 지불할 수도 있습니다.
저 역시 그렇게 씁니다. 대신 한 가지를 구분하려고 합니다.
내가 정말 좋아서 올린 생활수준인지 돈이 조금 더 생겼다는 이유만으로 저절로 올라간 생활수준인지.
둘은 비슷해 보이지만 꽤 다릅니다.
저는 여행에는 전보다 돈을 더 씁니다. 그건 제가 선택한 변화입니다.
반면 별 생각 없이 늘어난 구독 서비스나 습관처럼 붙은 배달비는 만족도가 거의 없었습니다. 이런 소비부터 다시 내려놓았습니다.
절약이라기보다 돈을 제가 좋아하는 곳으로 다시 배치하는 작업에 가까웠습니다.
예전에는 연봉이 오르면 숫자 자체가 좋았습니다.
이제는 월급명세서를 보면 다른 생각을 합니다.
이번에 늘어난 돈 중 얼마를 지금의 내가 쓰고 얼마를 미래의 나에게 보낼 것인가입니다.
연봉 인상분을 두 사람이 나눠 갖는다고 생각하면 조금 재미있습니다.
현재의 나도 가져가고, 10년 뒤의 나도 가져갑니다.
둘 중 한 명이 전부 가져가지만 않게 하는 겁니다.
돌아보면 제가 돈을 모으지 못했던 시절에는 미래의 제가 늘 협상에서 졌습니다. 월말에 남는 게 있으면 주겠다고 했는데, 남는 게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이제는 미래의 몫부터 떼어놓습니다.
물론 소득은 중요합니다.
절약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데에는 분명 한계가 있고, 소득이 커지면 선택지도 훨씬 넓어집니다.
하지만 제 경험에서는 월급이 오른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자동으로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소득이 오르면 소비가 따라왔고, 그 속도를 방치하면 몇 년 뒤에도 똑같이 월급날을 기다리게 됐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연봉 인상을 재테크의 결과가 아니라 재테크를 다시 설계하는 날로 생각합니다.
월급이 달라졌으니 자동이체도 다시 보고, 저축률도 계산하고, 생활비 기준도 한 번 확인합니다.
딱 한 번만 해두면 다음 월급부터는 알아서 굴러갑니다.
최근 월급이 올랐는데 이상하게 통장 잔고는 달라진 게 없다면, 이번 달 카드 내역을 한번 펼쳐보셔도 좋겠습니다.
큰 사치 하나가 범인일 가능성은 의외로 낮습니다.
예전에는 특별했던 것들 중 무엇이 어느새 ‘이 정도는 기본이지’가 됐는지를 찾아보세요.
저는 이 생각을 하고 난 뒤 제가 얼마나 많은 순간에 '이 정도는 괜찮지.' 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걸 찾고 나서야 월급이 오르는 속도와 자산이 늘어나는 속도가 조금씩 같은 방향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돈을 많이 버는 것만큼 중요한 건 더 벌기 시작한 순간 그 돈의 자리를 먼저 정해주는 것이었습니다.
※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재테크 방법을 기록한 글입니다. 특정 금융상품이나 저축·투자 비율을 권유하는 내용이 아니며, 각자의 소득과 지출, 재무 상황에 따라 적절한 방법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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