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최고점에만 산 사람 vs 최저점에만 산 사람, 20년 뒤 차이는 얼마였을까
지난주 회식 자리에서 오랜 직장 동료가 물었습니다.
"요즘 뭐 사면 좋을까?"
몇 년 전의 저였다면 신이 나서 대답했을 겁니다. 실제로 그랬으니까요. 그런데 이번엔 웃으며 다른 대답을 했습니다. 종목은 모르겠지만 적금 하나를 지수 적립으로 바꿔보라는 조언 정도만 해줬습니다. 직장 동료는 다소 시시하다는 표정이었고 저는 그 표정을 보며 조금 안도했습니다. 오늘은 제가 왜 이렇게 시시한 사람이 됐는지 그간 있었던 저의 이야기를 들려 드리고자 합니다.
투자를 시작하고 운 좋게 몇 달 잘 맞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친구들 사이에 소문이 났고 모임에 가면 자연스럽게 제 옆자리에 질문이 모였습니다. 뭐 사면 될까? 그거 지금 들어가도 되는거야? 솔직히 말하면 그 질문들이 좋았습니다. 회사에서는 과장이었지만 술자리에서는 전문가 그 자체가 되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종목을 알려줬습니다. 제가 들고 있던 혹은 확신하던 종목을 하나 둘씩 말입니다.
친구는 다음 날 샀다고 했습니다. 얼마를 넣었는지는 묻지 않았고 묻지 않은 걸 나중에 두고두고 후회하게 되었습니다.
몇 주 뒤 그 종목이 밀리기 시작했습니다. 제 계좌도 같이 파래졌지만 이상하게 제 손실은 견딜 만했습니다. 견딜 수 없었던 건 친구의 손실이었습니다. 친구는 괜찮다고 네 탓 아니라고 했지만 그 말이 더 아팠습니다.
그 무렵 제 행동이 좀 이상해졌습니다. 그 친구 이름이 떠오를 때마다 그 종목 시세를 확인했고 친구가 카톡을 보내면 종목 얘기일까 봐 열어보기 전에 한 번 심호흡을 했습니다. 모임에서 그 친구가 조용하면 계좌 때문인가 싶었고 반대로 웃고 있으면 억지로 괜찮은 척하는 건가 싶었습니다. 우정에 종목 하나가 끼어드니 관계의 모든 장면에 시세가 겹쳐 보이는 겁니다. 나중에 그 종목이 회복되고 친구가 결국 소소하게 벌고 나왔을 때도 이상하게 기쁘지 않았습니다. 이미 관계는 한 번 흔들렸고, 저는 그 몇 달의 초조함을 다시는 겪고 싶지 않았으니까요.
저는 장기투자로 분할식으로 꾸준히 오랫동안 접근해온 반면 친구는 큰 목돈을 한번에 들어 갔기 때문에 분명 좋은 종목을 추천했음에도 단기간에 느껴지는 온도 차이는 매우 컸던 것입니다.
추천만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수익률 이야기도 그랬습니다. 잘 될 때의 저는 묻지도 않았는데 수익률을 말하는 사람이었고 지금 생각하면 그 자리의 누군가는 그 말을 들으며 자기 계좌를 떠올렸을 겁니다. 그리고 손실이 났을 때의 저는 정반대로 입을 닫았습니다. 누가 요즘 어떠냐고 물으면 그냥 뭐 그렇지, 하고 넘겼죠. 잘 될 땐 말하고 안 될 땐 숨기는 사람. 돈 얘기가 저를 그런 사람으로 만들고 있다는 걸 알아채는 데 꽤 오래 걸렸습니다.
한 친구는 그 반대였습니다. 누구 소개로 뭘 사서 얼마를 벌었다는 이야기를 모임마다 옮겼는데 악의는 전혀 없었지만 그 이야기가 돌 때마다 테이블의 온도가 미묘하게 바뀌었습니다. 아무도 안 물었는데 다들 자기 계좌를 계산하는 침묵이 있었죠. 그 침묵이 몇 번 반복되고 나서 저는 규칙을 만들었습니다.
첫째, 종목 대신 구조만 말합니다. 뭐 사면 되냐고 물으면 지수 적립과 비상금 분리 이야기를 합니다. 지난주 그 친구도 그건 나도 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하고 있냐고 되물었더니 대답이 없었습니다. 아는 것과 하는 것 사이의 그 침묵이 종목 하나보다 훨씬 값진 대화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시시하지만 이건 추천이 아니라 구조라서 빠져도 제 탓이 아니고 올라도 제 덕이 아닙니다. 친구가 정말 원하면 제가 공부하는 법을 알려주지 답을 주지는 않습니다.
둘째, 수익률은 묻지도 말하지도 않습니다. 잘 될 때 참는 게 생각보다 어렵더군요. 그래도 참습니다. 제 자랑 한 줄이 누군가의 저녁을 계산기로 만든다는 걸 아니까요.
셋째, 남의 돈 이야기를 옮기지 않습니다. 누가 얼마 벌었대! 누가 얼마 잃었대! 이 문장은 정보처럼 보이지만 실은 비교를 배달하는 문장입니다.
이 규칙을 지키고 나서 모임이 편해졌습니다. 신기한 건 주식 이야기가 사라진 게 아니라 깊어졌다는 겁니다. 종목 이야기가 빠진 자리에 금리 오르면 네 대출은 어떻게 되느냐, 애 학비는 어디에 모으냐, 부모님 연금은 알아봤냐 같은 진짜 돈 이야기가 들어왔습니다. 지난 회식에서도 변동금리 대출을 안고 있는 친구와 한참 이야기했는데, 어떤 종목이 오를지가 아니라 다음 금리 결정일에 뭘 확인해야 하는지 같은 이야기였습니다. 몇 년 전 종목을 주고받던 우리보다 훨씬 어른스러운 대화였죠. 종목 이야기는 사실 돈 이야기 중 가장 얕은 층이었다는 걸, 그걸 걷어 내고서 드디어 깨달았습니다.
솔직히 아직 완벽하진 않습니다. 그 친구를 만나면 지금도 그때 그 종목이 얼마인지 순간 궁금해지고 잘 되는 달엔 입이 근질거립니다. 정말 추천해 주고 싶은 순간도 분명 있었습니다. 하지만 규칙은 저를 바꾼 게 아니라 붙잡아 두는 것에 가깝습니다.
지난 글에서 이번 추석에 부모님과 돈 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고 적었는데 오늘은 친구와의 돈 이야기를 접은 이야기를 적었습니다. 모순처럼 보이지만 이유는 같습니다. 관계가 돈보다 오래가야 하니까요. 부모님과는 대화가 없어서 관계가 흔들릴 수 있고, 친구와는 대화가 있어서 흔들릴 수 있었습니다. 어느 쪽이든 지키려는 건 계좌가 아니라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종목을 물어보는 친구에게 뭐라고 답하시나요. 저는 오늘도 시시한 사람으로 남기로 했습니다.
이 글은 개인의 경험을 나눈 것으로, 특정 상품이나 투자 방식의 권유가 아닙니다. 모든 투자의 판단과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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