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투자하면 결국 오른다'는 말, 일본에서는 34년이 걸렸습니다.
지난달에 S&P 500 20년 데이터로 글을 하나 썼습니다. 매년 최고점에만 산 사람도, 최저점에만 산 사람도, 20년 뒤에는 둘 다 돈을 벌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쓰고 나서 며칠 뒤에 이상하게 마음에 걸리는 게 하나 있었습니다.
그 글의 근거가 전부 미국이었다는 점입니다.
장기투자를 하면 결국 오른다는 말을 저는 꽤 믿는 편인데, 그 믿음의 증거로 제가 본 차트가 하나같이 미국 차트였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일부러 미국 밖을 봤습니다. 일본, 한국, 그리고 미국도 가장 안 좋았던 시기만 골라서요. 결론부터 말하면 그 문장은 여전히 맞았습니다. 다만 "결국"이 얼마나 긴 시간인지를 알고 나니, 같은 문장이 조금 다르게 읽혔습니다.
1989년 12월 29일, 도쿄
그날 닛케이 225 지수는 38,915.87로 마감했습니다. 당시 일본 주식시장은 전 세계 시가총액의 40~45%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미국이 33%였으니 일본이 더 컸습니다. 1982년에 일본 주식에 1만 달러를 넣었다면 1989년 초에 10만 달러가 돼 있었습니다. 7년 동안 매년 39%씩 오른 시장이었습니다.
그 다음 해에 38%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계속 떨어졌습니다. 2009년 3월 10일 종가는 7,054.98이었습니다. 고점 대비 82% 하락, 20년 걸린 하락이었습니다.
지수가 1989년 고점을 다시 넘은 날은 2024년 2월 22일입니다. 34년 2개월이 걸렸습니다.
이 숫자를 처음 봤을 때 저는 "그래도 배당이 있잖아"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찾아봤습니다. 배당을 전부 재투자한 총수익 기준으로도 1989년 말부터 2019년 말까지 30년 수익률은 -9.07%였습니다. 연평균 -0.32%. 본전이 된 건 2020년 11월이었습니다. 배당을 다 합쳐도 31년입니다.
30년이면 서른에 시작한 사람이 예순이 되는 시간입니다. "장기투자하면 결국 오른다"는 문장은 틀리지 않았지만, 이 경우 그 문장의 수혜자는 투자를 시작한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의 자녀였을 겁니다.
미국도 13년이 비어 있었습니다
제가 지난 글에서 쓴 20년은 2005년부터였습니다. 그 앞을 보면 다릅니다.
S&P 500은 2000년 3월 24일 1,527.46으로 고점을 찍고 49% 떨어졌습니다. 2007년 10월에 겨우 그 위로 올라갔다가(1,565.15), 금융위기로 다시 57% 떨어졌습니다. 2000년 고점을 확실하게 넘어선 건 2013년 3월입니다. 13년입니다. 2000년부터 2009년까지 10년 동안 S&P 500에 1달러를 넣어뒀다면 배당을 포함해도 0.91달러가 됐습니다. 미국에서도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부르는 시기입니다.
배당을 재투자한 기준으로는 회복이 빨라서, 2000년 고점 기준 6년 반 정도, 2007년 고점 기준 4년 반 정도였습니다. 일본보다 훨씬 낫습니다. 하지만 2000년에 은퇴 자금을 넣은 사람에게 6년 반은 짧은 시간이 아니었을 겁니다.
한국은 10년을 옆으로 갔습니다
코스피는 2007년 7월 25일에 처음 2,000을 넘었고 그해 10월 말 2,064.85에서 고점을 찍었습니다. 2008년 10월 24일에는 938.75까지, 55% 떨어졌습니다. 2010년 12월에 2,000을 되찾았는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습니다. 2011년부터 2016년까지 6년 동안 1,900에서 2,100 사이를 오갔습니다. 박스피라는 말이 그때 생겼습니다. 2,500을 처음 본 게 2017년 10월이니, 2,000에서 2,500까지 10년이 걸린 셈입니다.
회사 선배 한 분이 그 시절 얘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2007년에 펀드를 들었다가 반토막이 났고, 2010년에 본전 근처에서 전부 팔았다고요. 그 뒤로 주식은 안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분 판단이 틀렸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그 뒤 6년 동안 지수는 정말로 아무 데도 가지 않았으니까요.
그런데 지금 코스피는 7,000 근처입니다. 2007년 고점에서 19년, 배당을 빼고도 3.4배입니다. 연으로 환산하면 6.7%입니다. 10년 박스와 그 뒤의 급등을 다 합치면 결국 그 정도 숫자가 나옵니다. 문제는 그 19년 중 어느 10년을 사느냐에 따라 경험이 완전히 달랐다는 점입니다.
| 시장 | 고점 | 이후 최대 하락 | 고점 회복까지 (지수 기준) | 배당 포함 회복 |
|---|---|---|---|---|
| 일본 닛케이 225 | 1989년 12월, 38,915 | -82% (2009년 3월) | 34년 2개월 (2024년 2월) | 약 31년 (2020년 11월) |
| 미국 S&P 500 | 2000년 3월, 1,527 | -49%, 이후 -57% (2009년 3월) | 13년 (2013년 3월) | 약 6년 반 |
| 한국 코스피 | 2007년 10월, 2,064 | -55% (2008년 10월) | 3년, 이후 6년 박스권 | - |
세 시장의 공통점은 결국 회복했다는 것이고, 차이점은 그 기간이 6년에서 34년까지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일본에서도 살아남은 방법이 하나 있었습니다
여기서 끝나면 너무 우울한 글이라, 한 가지를 더 찾아봤습니다. 1989년 12월, 그러니까 최악의 시점에 일본 주식을 시작한 사람이 매달 같은 금액을 계속 넣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한 분석에 따르면, 1989년 12월부터 매달 833달러씩 넣은 사람의 계좌는 2019년 말에 617,545달러가 됐습니다. 같은 돈을 처음에 한 번에 넣은 사람은 272,318달러였습니다. 30년 동안 넣은 원금이 약 30만 달러니까, 한 번에 넣은 사람은 9% 손실이고 매달 넣은 사람은 두 배가 됐습니다. 매달 넣은 사람의 연 수익률은 4.22%였습니다.
지수가 아직 고점보다 40% 낮았던 2019년의 이야기입니다. 이 사람이 잘한 건 타이밍이 아니었습니다. 이 사람은 최악의 타이밍에 시작했습니다. 잘한 건 그냥 계속 넣은 것뿐입니다. 지수가 82% 떨어지는 동안에도요. 떨어지는 동안 산 주식들이 평균 단가를 낮췄고, 그 단가는 고점보다 한참 아래에 있었기 때문에 지수가 고점을 회복하기 훨씬 전에 계좌는 회복됐습니다.
솔직히 저는 이걸 실제로 할 수 있었을지 자신이 없습니다. 20년 동안 떨어지는 시장에 매달 돈을 넣는다는 게 어떤 기분일지 상상이 잘 안 됩니다. 다만 데이터가 말하는 건 분명합니다. 시장을 못 고른 사람도, 시점을 못 고른 사람도, 계속 넣은 사람은 살아남았습니다.
그래서 제 자동매수를 바꿨냐면
아직 안 바꿨습니다.
저는 매달 5일에 국내 상장 미국 지수 ETF를 자동으로 삽니다. 이 글을 쓰고 나니 그게 마음에 걸립니다. 1989년 일본 사람이 일본 주식만 산 것과 지금 제가 미국 주식만 사는 게 구조적으로 뭐가 다른지 설명이 잘 안 되기 때문입니다. 1989년 일본은 세계 시가총액의 40~45%였고, 2026년 6월 기준 미국은 62.7%입니다. 그때 일본 사람들에게 일본 주식만 사는 건 이상한 선택이 아니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시장이었으니까요.
그렇다고 전 세계 지수 ETF로 바꾸는 게 답인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전 세계 지수라고 해도 그 안에서 미국이 60%가 넘으니 크게 다르지 않고, "일본이 그랬으니까"라는 이유 하나로 바꾸는 것도 결국 과거 사례 하나에 기대는 것이라서요. 미국이 일본처럼 될 거라는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닙니다. 그럴지 아닐지 저는 모릅니다. 이 글에서 확인한 건 "모른다"는 사실 그 자체입니다.
대신 두 가지는 정했습니다. 하나는 자동매수를 어떤 경우에도 끄지 않는 것입니다. 일본 데이터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변수가 그거였으니까요. 다른 하나는 이 돈의 목표 기간을 10년에서 15년 이상으로 늘려 잡는 것입니다. 미국의 잃어버린 10년이 배당 포함 6년 반이었고, 한국의 박스권이 10년이었습니다. 10년은 운이 나쁘면 딱 그 기간 전체가 옆으로 가는 시간이라는 걸 이번에 알았습니다. 지역을 나눌지는 조금 더 생각해 보고, 바꾸면 그때 적겠습니다.
이 데이터를 읽을 때 조심할 것
지수 기준 회복과 배당 포함 회복은 다릅니다. 뉴스에 나오는 "34년 만에 회복"은 지수 기준이고, 실제 투자자의 계좌는 배당만큼 먼저 회복됩니다. 반대로 매달 넣은 사람의 결과는 원금 전체가 30년 동안 투자된 게 아니라서, 한 번에 넣은 사람의 수익률과 직접 비교하면 안 됩니다. 이 차이는 지난 글에서 다룬 금액가중 수익률 이야기와 같습니다.
그리고 세 시장 모두 결국 회복했다는 것도 살아남은 시장만 본 결과입니다. 회복하지 못한 시장도 역사에는 있습니다. 이 글은 최악의 경우를 보여주려는 글이 아니라, "결국"이라는 말의 길이를 재보려는 글입니다.
출처: 닛케이 지수 고점·회복 수치는 일본경제신문 및 서울신문 보도(2024년 2월 22일); 닛케이 총수익률과 적립식 투자 계산은 A Frugal Doctor, "Japan's Lost Decades: 30 years of negative returns from the Nikkei 225"; 1989년 일본의 세계 시가총액 비중은 The Motley Fool(2017), 2026년 미국 비중은 MSCI ACWI IMI 지역별 구성(2026년 6월 30일 기준); S&P 500 2000~2009년 수익률은 AMG Wealth, "The Lost Decade, Revisited"; 코스피 수치는 이투데이(2017년 10월 23일) 및 한국거래소 자료. 회복 기간과 하락률은 각 지수의 종가 기준으로 필자가 계산했으며, 배당 포함 회복 시점은 인용한 분석의 추정치입니다.
이 글은 공개된 시장 데이터를 정리한 기록이며, 특정 국가·지수·상품에 대한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 과거의 회복이 미래의 회복을 보장하지 않으며, 모든 투자 판단과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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