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금 대신 미국 지수를 모으기 시작하고 3년, 솔직한 이야기
은행 앱에서 적금 만기 알림이 온 날을 아직 기억합니다. 3년을 꼬박 부었으니 꽤 뿌듯한 마음으로 열어봤는데, 세금 떼고 남은 이자를 보는 순간 기분이 이상해지더군요. 매달 허리띠를 졸라매고 모은 시간에 비해, 은행이 제게 준 보상은 좋은 식당에서 몇 번 외식하면 사라질 금액이었습니다.
그날 저녁에 물가 생각을 처음으로 진지하게 해봤습니다. 3년 전과 비교하면 점심값도, 월세도, 커피값도 다 올랐는데 제 돈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통장 잔고 숫자는 분명히 늘었는데, 그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은 오히려 줄어든 상태. 돈을 모으고 있다고 믿었지만, 구매력 기준으로는 조금씩 가난해지고 있었던 셈입니다.
그래도 주식은 무섭지 않냐고 물으신다면
맞습니다. 저도 무서웠습니다. 주변에 주식으로 돈 잃은 사람 이야기는 넘쳐났고, 저 역시 예전에 남들 따라 개별 종목 몇 개를 샀다가 마음고생만 하고 나온 경험이 있었으니까요. 그때 내린 결론은 "나는 종목을 고를 능력이 없다"였습니다.
그런데 공부를 하다 보니 묘한 선택지가 하나 보였습니다. 종목을 고르지 않는 투자. 미국 대표 기업 500개를 통째로 담은 S&P500 지수에 투자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이 지수의 구조가 재미있습니다. 반에서 성적순으로 자리를 배치하는데, 성적이 떨어진 학생은 반에서 내보내고 새로 잘하는 학생을 앉히는 식입니다. 제가 기업을 분석하지 않아도, 지수가 알아서 미국에서 제일 잘나가는 회사들만 계속 유지해 줍니다. 개별 기업은 망할 수 있어도 "미국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500개 기업"이라는 집합 자체는 계속 물갈이되며 살아남는 거죠. 실제로 이 지수는 지난 10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전쟁과 공황과 위기를 다 겪고도 연평균 10% 안팎의 수익률을 만들어 왔습니다.
물론 여기서 멈췄다면 저는 시작하지 못했을 겁니다. 평균 10%라는 말 뒤에는 반토막이 났던 해도, 몇 년씩 마이너스였던 구간도 숨어 있으니까요. 제가 용기를 낸 것은 다음 방법을 알고 나서였습니다.
적금 붓던 습관을 그대로 가져왔습니다
방법은 허무할 정도로 단순합니다. 적금에 넣던 금액 그대로, 매달 월급날 다음 날에 국내 상장된 S&P500 ETF를 삽니다. 지수가 올랐는지 내렸는지 보지 않고, 정해진 날에 정해진 금액만큼. 사실상 적금 자동이체를 ETF 매수로 바꾼 것뿐입니다. 월급날 다음 날 아침 출근길에 앱을 열고 매수 버튼을 누르는 데 걸리는 시간은 1분이 채 안 됩니다. 처음 몇 달은 어색했는데, 지금은 양치질처럼 그냥 하는 루틴이 됐습니다.
이 방식의 좋은 점은 심리를 이겨낼 필요가 없다는 데 있습니다. 지수가 떨어진 달에는 같은 돈으로 더 많은 수량을 담게 되니, 하락장이 세일 기간처럼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예전에 개별 종목을 할 때는 떨어지면 무섭고 오르면 초조했는데, 매달 기계적으로 모으기 시작한 뒤로는 시장이 뭘 하든 제 할 일이 정해져 있으니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요즘은 계좌를 열어보는 횟수 자체가 줄었습니다. 이게 제일 큰 변화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왜 국내 상장 ETF였는지도 적어두겠습니다
참고로 저는 미국 계좌를 따로 만들지 않고, 우리 증시에 상장된 S&P500 ETF를 씁니다. 환전 없이 원화로, 늘 쓰던 증권사 앱에서 살 수 있어 진입 장벽이 낮았고, 연금저축 계좌 안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모을 수 있다는 점이 결정적이었습니다. 같은 지수를 따라가는 상품이 여러 운용사에서 나와 있는데 담긴 내용물은 사실상 같아서, 저는 보수가 낮고 규모가 큰 것을 골랐습니다. 상품 고르는 데 머리를 쓸 일이 없다는 것도 이 방식의 매력 중 하나입니다.
이 방법이 맞지 않는 돈도 있습니다
솔직하게 적어야 할 부분입니다. 이 방식은 만능이 아닙니다.
먼저, 원금이 보장되지 않습니다. 내년에 쓸 전세금이나 결혼 자금처럼 시기가 정해진 목돈을 여기에 넣는 것은 저축이 아니라 도박입니다. 하필 그 시점에 시장이 하락장이라면 손실을 확정하고 꺼내야 하니까요. 그런 돈은 지금도 예적금이 정답이라고 생각합니다. 둘째, 환율입니다. 미국 자산이다 보니 지수가 올라도 원화가 강해지면 수익이 줄어들 수 있고, 그 반대도 일어납니다. 저는 이것을 달러 자산을 함께 갖는 효과라고 받아들이기로 했지만, 출렁임이 하나 더 있다는 사실은 알고 시작해야 합니다. 셋째, 인내심이 필요합니다. 이 투자의 성패는 종목 선정이 아니라 하락장에서 적립을 멈추지 않는 것에서 갈립니다. 저도 계좌가 파랗게 물든 몇 달을 지나면서, 이 방식의 진짜 난이도는 머리가 아니라 엉덩이에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폭락 헤드라인이 쏟아지던 어느 달에는 이번 달만 건너뛸까 하는 생각이 목까지 올라왔고, 지인이 테마주로 몇 주 만에 크게 벌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날에는 제 방식이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때마다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 있습니다. 나는 시장을 이기려는 게 아니라, 시장만큼만 가려는 것이라고. 그 한 문장이 저를 여러 번 붙잡아 줬습니다.
적금을 부정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해는 없으셨으면 합니다. 저는 지금도 비상금과 단기 자금은 예적금에 둡니다. 바뀐 것은 돈마다 역할을 나눠준 것뿐입니다. 1~2년 안에 쓸 돈은 은행에, 10년 이상 묻어둘 돈은 시장에. 예전에는 모든 돈을 한 바구니에 넣고 "안전하다"고 안심했다면, 지금은 돈의 쓰임새에 따라 자리를 정해줍니다.
시작한 뒤로 달라진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저축률이 올랐습니다. 매달 사 모으는 수량이 쌓여가는 재미가 생기니, 쓸 돈을 조금 줄여서라도 매수 금액을 키우고 싶어지더군요. 적금을 부을 때는 만기 날짜만 기다렸는데, 지금은 모으는 과정 자체가 즐겁습니다. 저축이 의무에서 취미가 된 셈입니다.
적금 만기 알림을 받던 그날의 저처럼, 성실하게 모으고 있는데 뭔가 제자리인 것 같은 기분이 드는 분이 계시다면 한 번쯤 계산해 보시길 권합니다. 내 저축의 이자율과 내 생활비의 상승률, 둘 중 어느 쪽이 빠른지. 그 답이 저를 여기까지 데려왔습니다.
저는 개인연금, 퇴직연금(DC형)으로 돌려서 모두 미국 지수형에 투자하고 있습니다. 안전자산 30% 부분까지도 저는 최대한 미국 주식에 가까운 형태의 종목들을 매수했습니다.
그리고 개별 미국 주식도 저는 단 한번도 판매하지 않고 계속 우직하게 매수하고 있습니다. 떨어지는 날은 더 저렴하게 산다는 마인드입니다. 그런 마인드로 앞으로 10년간 시장을 리드할만한 기업들 중심으로만 매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궁금하신 분들에게는 저의 포트폴리오와 매수 타이밍 그리고 Q&A를 통해 여러분들께 도움을 드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이 글은 개인의 경험을 나눈 것으로, 특정 상품의 매수 권유가 아닙니다. 모든 투자의 판단과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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