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최고점에만 산 사람 vs 최저점에만 산 사람, 20년 뒤 차이는 얼마였을까
작년 추석 연휴 마지막 날 밤을 기억합니다. 가족들은 다 자는데 저는 거실에 앉아 휴대폰을 붙들고 있었습니다. 연휴 동안 밤마다 미국 지수를 확인했고, 커뮤니티에 들어가 "연휴 후 첫날 어떻게 될까요" 같은 글들을 읽었고, 마지막 날에는 내일 아침 우리 장이 얼마나 밀릴지 계산하고 있었습니다.
다음 날 시장은 제가 걱정한 만큼 빠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미 지쳐 있었습니다. 아무 매매도 하지 않았는데 닷새를 계좌와 씨름한 셈이었으니까요. 그때 이상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장은 닷새를 푹 쉬었는데, 왜 저만 쉬지 못했을까.
올해 추석은 열흘 남짓 남았습니다. 이번에는 연휴를 좀 다르게 보내보려고, 지난 며칠 동안 준비한 것들을 정리해 봤습니다.
연휴 불안의 정체를 저는 한동안 잘못 짚고 있었습니다. 장이 쉬니까 불안한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국내 증시가 휴장한다는 건 정확히 말하면 제 주문만 멈춘다는 뜻입니다. 미국장은 평소처럼 열리고, 환율도 움직이고, 유가도 지표 발표도 그대로 나옵니다. 즉 연휴는 시장이 멈추는 기간이 아니라 정보는 계속 쌓이는데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기간입니다.
불안의 원인은 정보의 공백이 아니라 정보와 행동 사이의 시차였던 겁니다. 그래서 연휴가 길수록 마음이 더 무거워집니다. 며칠 치 소식이 한꺼번에 쌓여 있다가 연휴 후 첫날 아침에 한 번에 반영되니까요.
그런데 이 구조를 이해하고 나니 대응 방향이 바뀌었습니다. 제가 통제할 수 있는 건 그 며칠 동안의 뉴스가 아니라, 그 며칠 동안의 제 상태였습니다.
힌트는 또 회사에서 얻었습니다.
마케팅 분석가로 일하면서 장기 휴가를 갈 때가 있습니다. 그때 제가 하지 않는 일이 하나 있는데, 돌아가는 캠페인을 전부 꺼두고 가는 겁니다. 광고를 끄면 그동안 쌓인 학습 데이터가 날아가고, 복귀해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자리를 비운다고 성과를 지워버리는 담당자는 없습니다.
대신 하는 일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어떤 숫자가 어디까지 벗어나면 알림을 받을지 기준을 정합니다. 둘째, 매일 대시보드를 들여다보는 대신 하루 한 번만 확인할 시간을 정합니다. 셋째, 복귀 첫날에 무엇부터 볼지 미리 적어두고 갑니다.
요약하면 끄고 가는 게 아니라, 감시를 단순하게 만들어 두고 가는 것입니다. 지난 몇 년의 제 연휴는 정확히 반대였습니다. 감시는 하루 종일 하면서, 정작 복귀 첫날 규칙은 하나도 없었죠.
그래서 올해는 연휴 전 계좌 점검을 휴가 인수인계처럼 해보기로 했습니다.
명절은 생각보다 돈이 많이 나가는 이벤트입니다. 선물, 용돈, 교통비, 외식비까지 평소 예산에 없던 지출이 며칠 사이에 몰립니다.
여기서 제가 제일 경계하는 상황은 명절 지출 때문에 투자금에 손을 대는 일입니다. 통장을 다섯 개로 나눠 쓰는 이유가 이런 순간에 있습니다. 명절 예산은 생활비 자리 안에서 미리 떼어두고, 부족하면 비상금 자리에서 빌려온 뒤 다음 달에 갚습니다. 투자 자리는 건드리지 않는 게 원칙입니다.
한 가지 더 확인하는 건 연휴 직후에 나가는 고정비입니다. 카드 결제일이나 대출 이자 납입일이 연휴 직후에 걸려 있으면, 명절에 쓴 돈 때문에 그 며칠이 빠듯해질 수 있습니다. 미리 알고 있으면 당황할 일이 없습니다.
3년째 쓰고 있는 다섯 칸짜리 일지에, 연휴 전에는 한 장을 따로 씁니다. 매매 기록이 아니라 상태 기록입니다.
지금 현금 비중이 얼마인지, 지금 들고 있는 종목들의 매수 이유가 아직 유효한지, 그리고 지금 제 감정이 어떤지. 이 세 줄이 전부입니다.
이걸 쓰는 이유는 하나입니다. 연휴가 끝나고 시장이 크게 움직이면, 저는 반드시 "원래 이럴 것 같았다"거나 "원래 정리하려던 참이었다"고 기억을 편집합니다. 편집을 막는 방법은 편집되기 전의 원본을 남겨두는 것뿐이더군요.
이번 연휴에는 하루 한 번, 아침에 10분만 보기로 했습니다. 밤사이 미국장이 어떻게 움직였고 왜 움직였는지 헤드라인 한 줄, 그리고 환율 방향. 평소 출근 전에 보던 15분 루틴의 축소판입니다.
그 외 시간에는 증권 앱 알림을 꺼둡니다. 이건 정보를 차단하려는 게 아닙니다. 실시간으로 봐도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기간이기 때문입니다. 할 수 있는 게 없는데 계속 보는 건 정보 수집이 아니라 불안의 반복 재생입니다.
이게 네 가지 중에 가장 효과가 좋았습니다.
연휴 후 첫날 아침, 시장은 며칠 치를 한 번에 반영하며 시작합니다. 그 순간의 숫자는 크고 감정은 뜨겁습니다. 판단하기에 최악의 조건이죠.
그래서 규칙을 미리 적어둡니다. 저의 경우는 이렇습니다. 개장 직후 30분 동안은 매매하지 않는다. 새 종목은 그날 사지 않는다. 매도는 미리 적어둔 조건에 걸린 경우에만 한다.
머리가 차가운 지금 정한 규칙을, 머리가 뜨거운 그날의 제가 따르게 하는 겁니다. 이게 순서를 바꾸는 것만으로 얻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이득이라고 생각합니다.
연휴 전이 되면 유혹도 같이 옵니다. 저는 세 가지를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불안해서 파는 정리매매를 하지 않습니다. 연휴 동안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일단 비워두자는 생각은 그럴듯하지만, 결국 이유가 아니라 기분으로 파는 겁니다. 지난여름 하락장에서 배운 대로, 팔 이유가 있는 건 팔고 없는 건 그냥 들고 갑니다.
연휴 효과를 노린 베팅도 하지 않습니다. 명절 관련 테마니 연휴 후 반등이니 하는 이야기는 매년 돌지만, 저는 이걸 검증할 방법이 없습니다. 회사에서라면 근거 없는 가설에 예산을 태우지 않을 텐데, 제 돈에는 그러기가 참 쉽습니다.
커뮤니티 전망 글을 순회하지 않습니다. 작년에 제가 읽은 연휴 전망 글들을 지금 돌아보면, 맞은 것도 있고 틀린 것도 있습니다. 문제는 그 글들이 제 판단을 도와준 게 아니라 제 불안의 재료가 됐다는 겁니다.
지난 글에서 이번 추석에는 부모님과 돈 이야기를 해보겠다고 적었습니다. 그래서 올해 연휴 준비 목록에는 항목이 하나 더 늘었습니다.
질문 세 개만 준비했습니다. 국민연금은 언제부터 얼마나 나오는지, 보험은 어떤 게 있고 겹치는 건 없는지, 갑자기 목돈이 필요할 때 어디서 꺼내실 수 있는지.
캐묻는 자리가 되지 않게, 제 이야기부터 먼저 꺼낼 생각입니다. 제 대출이 변동금리인 줄도 모르고 살았던 이야기, 통장을 다섯 개로 나눈 이야기. 제 허술함을 먼저 내놓으면 대화가 조금 쉬워지지 않을까 싶어서요.
결과가 어떻든 연휴가 끝나면 그 이야기도 기록해 두려고 합니다.
연휴 전 계좌 점검이라고 하면 보통 무엇을 사고 무엇을 팔지의 문제로 생각하게 됩니다. 저도 몇 년 동안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제 연휴를 망친 건 포트폴리오가 아니라 저였습니다. 시장은 며칠 쉬었는데 저만 쉬지 못했고, 아무 결정도 하지 않았는데 피로만 남았죠.
그래서 올해는 계좌를 정리하는 대신 연휴 동안의 저를 정리해 두기로 했습니다. 돈이 있어야 할 자리를 미리 정해두고, 지금의 제 상태를 기록해 두고, 볼 시간을 정해두고, 돌아온 첫날의 규칙을 미리 적어두는 것. 네 가지 다 시장에 대한 준비가 아니라 저에 대한 준비입니다.
모두 편안한 명절 보내시길 바랍니다. 연휴가 끝나고 나면, 이 준비가 실제로 효과가 있었는지 솔직하게 채점해서 다시 적어보겠습니다.
제 포트폴리오 중에 잘된 부분 그리고 잘되지 않은 부분도 조만간 정리해서 공유 드릴 수 있도록 부단히 노력하도록 하겠습니다.
저도 회사를 다니면서 블로그 포스팅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는 상황인데 조금 더 노력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항상 꼼꼼하게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글은 개인의 경험과 생각을 정리한 기록이며, 특정 종목이나 상품에 대한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 모든 투자 판단과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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